자본의 멱살을 거머쥔 공산주의라는 유령
마르크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수치스럽게 감추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모든 사회적 제약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있음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 계급들이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 마르크스 · 엥겔스, <공산당 선언> 중에서
세상을 떠도는 ‘공산주의 유령
20세기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시대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 세계가 마르크스를 영웅으로 받드는 국가들과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나라들로 나뉘어 대립했으니 말이다. 냉전(cold war)이라 불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은 마르크스를 따르느냐 부정하느냐를 놓고 생긴 갈등이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3분의 1은 마르크스 사상이 곧 ‘진리’였던 세상에서 살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다. 이는 역사상 어떤 종교나 사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 인류가 관여하다시피 한 이 엄청난 ‘사유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1990년, 구소련의 몰락을 시작으로 마르크스를 추종하던 국가들은 하나하나 자본주의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지금도 중국이나 쿠바 같은 나라들이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이제는 그들에게도 돈이 최고신(最高神) 임을(最高神)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는 여전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 떨칠수록 그가 지적한 자본의 문제들은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마르크스에 기대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사회 비판 세력의 대부분은 마르크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점에서 1848년에 발표된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 첫머리에 나오는 “공산주의란 유령이....... 세상(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말은.” 아직도 유효한 셈이다.
스쿠루지와 성냥팔이 소녀의 시대
마르크스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사상이 ‘공산 사회’라는 인류의 오랜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 사회한 차별이나 억압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말한다. 마르크스 방식대로 말하자면 ‘누구나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세상’이 공산 사회다.
물론 마르크스 이전에도 이상 사회에 대한 주장은 얼마든지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나 토머스모어(Thomas More, 1478~1535) dml <유토피아>도 모두 공산주의 사회라는 꿈을 담고 있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 책들은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영향’만 끼쳤을 뿐,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마르크스만 그토록 파장을 일으켰던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대 탓’이 아니었을까 한다. 산업 혁명은 역사상 최초로 사람들에게 ‘계급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계급이란 일종의 패거리를 말하는데, 못사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잘사는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는 한패’라는 동류의식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질감이 생기기 어렵다. 따라서 계급이라는 패거리가 생기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여 있어야 한다. 그 당시 증기 기관의 등장, 이를 이용한 대규모 모직 공장의 출현은 노동자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구나 그때는 원료인 양털을 얻기 위해 땅주인들이 농토를 목초지로 바꾸거나 농지 개량으로 농업 효율성이 높아져, 농민들이 내쫓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도시로 흘려들어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 곧 ‘노동자 계급’을 형성했다.
19세기 도시 노동자들의 생활은 지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혹했다. 그 당시 발표된 소설을 보면 도시를 줄곧 ‘하수구’에 비유하고 있는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 공장에서는 매일 엄청난 유독가스를 내뿜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노동에 네 살배기 어린 자식까지 동원해도 먹고살기 힘들만큼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나는 바람에 영국의 런던에서조차도 늘 25만 가구분 정도의 분뇨가 수거되지 못했다. 이런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질병과 전염병에 시달렸고, 노동자 가정의 영아 사망률은 90퍼센트에 이르렀다.
자본가들은 이런 도시를 피해 쾌적한 교외로 옮겨 갔다. 마르크스 사상의 ‘배경’이 되는 영국의 경우, 자본가들은 공해 물질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지 않는 도시 서쪽으로 옮겨 가서 고급 주택가를 이루며 살았다.
돈은 도시에서 벌되, 부유한 이들끼리 모인 별천지에서 생활과 문화를 즐겼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에 맞서는 자본가 계급, 곧 부르주아는 이렇게 생겨났다.
구두쇠 영감 스쿠루지가 등장하는 찰스 디킨스(Charles J. H. Dickens, 1812~1870)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안데르센(Hans C. Andersen, 1805~1875)의 <성냥팔이 소녀>가 이러한 시대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돈만 알고 가난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는 스쿠루지는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던 자본가의 모습이었고, 거리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불쌍한 고아들로 넘쳐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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