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더구나 스토아 철학은 로마 같은 다민족 국가에 딱 맞는 법의식(법에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규범의식)을 제공하는 사상이기도 했다(로마법은 현대 법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고대 전쟁에서 패배자에 대한 승자의 약탈과 학살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특이하게도 승자의 권리를 유보할 줄 알았다. 점령한 뒤에도 적들의 종교와 풍습을 그대로 인정했고, 로마에 복종하는 한 지도자들의 권위도 인정해 주었다. 거기다 약간의 세금만 감수한다면 안전은 제국의 군대가 알아서 챙겨 주니, 정복당한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로마라는 '우산' 아래로 자연히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로마 인들은 왜 그토록 적에게 관대했을까?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여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인간이 만든 법이란 사실 '가짜 법률'에 지나지 않는다. 대자연 속에는 머리가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진짜 법이 있다. 이른바 '자연법'이 그것이다. 누군가 사람을 이유 없이 죽였다면, 아마도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일인 양 흥분하여 살인자를 비난할 것이다. 자연법이란 이렇듯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는 자연의 섭리,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법을 의미한다.
자연법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법에 복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피부가 하얗건 까맣건, 라틴 어를 쓰건 게르만 어를 쓰건 간에, 자연법을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어느 누구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 중에는 에픽테토스(Epiketos, 55?~135?) 같은 노예 출신에서 황제인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고루 섞여 있다. 고대 사회 기준으로는 좀처럼 있기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철인(哲人) 황제라 불리는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유명한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법이 적용되는 국가, 평등함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 무엇보다도 통치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제일 중시하는 군주 국가가 가장 좋은 나라다.
이로써 로마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대제국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설명되었다. 로마를 지탱한 근본 원인은 군사력도 부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이들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무를 명예로 아는 지극히 스토어 철학적인 정신에 있었던 것이다.
승자의 논리가 못 되는 이유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인류가 가장 행복했고 제일 번영했던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도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황제의 죽음에서부터 코모두스(Commodus, 161~192) 황제의 즉위 직전까지라고 할 것이다. 학자들이 현제(賢弟)들의 세기'라고 부르는 이 인간은 스토아 철학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스토아 철학이 얼마나 건강한 국가 철학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승자의 철학'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데가 많았다. 승자는 부드럽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며 여유로워야 하낟. 하지만 스토아 철학에 물든 아우렐리우스 황제 같은 지도자들은 '군인 정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인생이란 신의 섭리에 따라가는 의무로, 감정은 오직 억제해야 할 '그릇된 것'일 뿐이었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는 이민족의 침략이 잦아서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토어의 엄숙 주의는 지나친 데가 있다. 사회지도층의 엘리트주의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사회 통합을 해치기도 한다. 하층민이 따르기에는 사회적 윤리 잣대가 너무 높은 나머지, 하류층의 문화가 포기와 쾌락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속성상 민중의 인기를 외면할 수 없는 법, 엘리트 층의 엄한 윤리 의식도 시간이 흘러가면 대중의 입맛에 맞추느라 서서히 썩어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스토아 철학의 절정기이자 로마가 최고로 강성했던 아우렐리우스 통치 이후의 로마는 타락한 군중의 불안을 빵과 서커스로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로마에 의한 평과, 퍽스 로마나(Pax Romana)는 계층 간의 심각한 갈등 속에서 이렇게 점차 무너져 갔다.
이 점은 현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은 감히 대적할 만한 적이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ra)를 맞이했지만, 그 사회는 지극히 도덕적인 상류 문화와 극도로 저질인 대중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상태다. 그뿐 아니라 로마가 이민족의 침략과 사회 갈등에 끊임없이 시달렸듯, 미국 역시 테러와 인종 갈등 앞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깨어 있는 지도자들이라면 로마와 스토아 철학의 관계에서 세상을 헤쳐 갈 시사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울증 치료제, 스토어 철학
인생이란 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는 개의 신세와 같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계다가 삶은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고통과 부하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비관적인 생각이 가슴을 채우고 있다면, 스토아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 보라. 그중에서도 키케로(Marcus T. Cicero, 기원전 106~기원전 43)의 <노년에 대하여>는 인생무상에 허무해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딱 좋은 '철학 치료제'다.
키케로는 말한다. 인생이란 아무 쓸모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기간이 아니다.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는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황랑 해지지는 않는다. "대게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들 때문에 와해되고 노인들의 의해 회복되었다." 나이 듦을 서글퍼하지 말고 삶을 성찰하며 경륜을 쌓아라.
더구나 노년의 체력과 의욕 저하는 오히려 축복할 만한 일이다. 육체가 쇠약해진 만큼 몸에서 오는 강렬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에 스포 클래스(Sophocles)는 성욕을 느끼지 못해서 아쉽냐는 질문에, "무슨 끔찍한 말을! 잔인하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막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왔는데!"라고 말하며 기뻐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스토아 철학자들은 신선한 삶 속에서도 항상 그 뒷면에 있는 긍정적인 면을 보게 해 준다. 그들을 읽고 있으면 늘어진 근육에 힘이 불끈 솟으며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터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대여, 스토어 철학과 친해져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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