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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아이슬란드 PART 7

by bookish person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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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아이슬란드 단어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아이슬란드의 국어학자들은 순수한 아이슬란드 단어를 만들기 위해 바이킹의 언어를 끌어온다. 물론 바이킹의 언어에는 광대역은 고사하고 저구를 뜻하는 단어도 없었다. 그래서 국어학자들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뜻하는 아이슬란드 단어‘(sjonvart)'은 직역하면’’구경거리 전달자‘라는 뜻이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아이슬란드어로 옮기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결국 국어학자들은’’장거리를 날아가는 불‘이라는 뜻의 단어를 만들었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컴퓨터를 뜻하는’(tolva)'다.‘숫자의 예언자’라는 뜻이다. 이단 어를 쓰면 내 컴퓨터가 왠지 마법의 물건 같고, 조금은 불길한 물건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마음에 든다. 사실 컴퓨터가 그런 물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외국인이 아이슬란드에바친최고의찬사는 19기에 라스무스 크리스티안 라스크라는 덴마크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아이슬란드어를 배웠다고 주장했다. 나는이말을 듣고 정말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어와 행복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 언어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말로 자신의 기분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분을 창조해낼 수도 있을까?

몇몇 단어들이 즉각적으로 기쁨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사랑해’나‘당신은 이미 승자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그렇다. 하지만‘감시’나‘전립선 검사’ 같은 말은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모든 언어에는 공통적인 특징 이하나 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특징이 아니다. 내가 이미 스위스에서 깨달은 것처럼, 모든 언어에는 긍정적인 표현하는 단어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훨씬 더 많다. 내가 사람들에게 서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가 이토록 어려운 데에도 그 점이 한몫하는 것 같다.

문자 그대로 행복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구조가 처음부터 불행에 적합하게 되어있는것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원래 칭얼거리게 되어있는 종족인가? 그런 지도 모른다. 아니면 행복이 워낙 고귀하고 자명한 것이라서 그것을 표현하는데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낙관적인 사람이라면 신경과학분야에서 나온 희망적인 증거들을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위스콘신대학의 연구팀은 우리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행복을 담당하는 부분과 마찬가지로 진화적인 관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최근에업그레이드된이두 부분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언어는 그냥 조수석에 앉아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입장인 걸까, 아니면 운전석에 앉아있는 걸까?

아직은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언어가 엄청난 기쁨의 원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변덕스럽고 자그마 한나라에서 현명하고 굉장한 일들은 모두 언어에서 흘러나온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전형적인 인사말인‘komdusoell'을 직역하면’’행복이 오다 ‘가‘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헤어질때하는인사말인’vertusoell'은‘행복하게 가다’라는 뜻이다. 나는이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조심해서 가라’라든가‘나중에 보자’라는 말보다 훨씬 더 낫다.

아이슬란드어는 아이슬란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등주의적이며 허세가 전혀 없다. 빌홈은아이슬란드어의 무심한 우아함을 시로(달리 뭐가 있겠는가?) 포착해냈다.

에어컨이켜진방에서는이 언어의 문법을

이해할 수 없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소리에 부드러운 모음이 묻혀버린다.

하지만 산바람 속에서는 그 모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은 배의 뱃전을 타고 넘는 험한 바다에서도,

노부인들은 이 언어로 긴 머리를 말 수 있다.

콧노래를 부를 수도, 뜨개질을 할 수도, 팬케이크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이 언어로 칵테일파티를 할 수는 없다.

손에 술잔을 들고 일어서서 재치 있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언 어를 말하려면 앉아 야한다.

이언 어가 너무 무거워서 예의를 차리거나 가벼운 수다를 떨 수가 없다.

일단 문장을 시작하면,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가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특히 마지막 줄이 마음에 든다. 말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서서 자기만의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이슬란드 최고의 시인은에질스칼라그림손이라는 바이킹이다. 약 1000년 전에 살았던 그는, 한 아이슬란드인 예술가의 표현에 따르면 “아름다운 시를 쓴 비열한 개자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에질은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문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썼지만, 조금이라도 기분 이상하면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눈알을 파버리기도 했다.”당시의문학평론가들이에질의 작품을 아주........ 조심스레 평했을 것 같다.

아이슬란드에서는시와폭력이어찌나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지, 고 대북 유럽의 신인 오딘이 시의 신과 전쟁의 신을겸할정도다.

이처럼 격렬한 문학적 경향 덕분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걸까?? 잘 모르겠다. 언어를 사랑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자신의 절망을 유창하게 표현할 수는 있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 시인이라면 누구나(블로거도 마찬가지다) 알고 있듯이, 불행도 표현하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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